'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재조명...'영화로도 나왔던'

종합뉴스 / 이현정 기자 / 2022-03-24 23:38:41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매일안전신문=이현정 기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주목 받고 있다.


24일 밤 10시 30분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87, 종철이와 비둘기들' 편으로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다뤄진 사건은 지난 1987년 1월 15일로 거슬러간다. 당시 신성호 기자는 대검찰청 출입 기자로 여느 날과 같이 대검찰청을 돌던 중 뜻밖의 첩보 하나를 입수했다. 바로 조사를 하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이야기에 신성호 기자는 누가? 어떻게, 왜 죽은 걸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됐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드나들며 다급히 탐문 취재를 한 결과 죽은 사람이 놀랍게도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망한 청년은 서울대학교 3학년 박종철로 당시 겨우 23세였다. 이후 목격자가 등장해 청년이 물범벅이 된 채 사망해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 결국 박종철 군이 경찰 조사를 받던 중 물고문을 당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해한 경찰 2명이 곧바로 체포됐다.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던 사건은 엄청난 반전을 맞게 된다.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재야운동가 이부영 씨는 교도관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박종철을 죽인 진범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사실을 잘못 알렸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 이에 이부영 씨는 비둘기한테 대신 편지를 전하기로 했다. 일명 '비둘기 작전'이 시작됐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비둘기로 인해 알려졌다고 했다. 10·28 건국대학교 항쟁 진압 이후 의기양양한 전두환 정권은 '반제동맹당 사건'과 '마르크스-레닌주의당(이하 ML당) 사건' 등의 공안조작 사건들을 만들어내며 소위 '얼음정국'을 조성하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1987년 1월 14일, 경찰 대공수사관들은 피해자 박종철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했다. 수사관들은 1985년 10월에 터진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박종운의 소재를 말하라고 추궁했고, 박종철은 모른다고 했다.

이에 과민반응한 수사관들은 박종철의 옷을 모두 벗기고 조사실 안에 있는 욕조로 끌고 가 물고문을 반복했다. 

 

그래도 모른다고 하자 결박당한 두 다리를 들어올려 또 다시 물고문을 가했고, 고문 도중 욕조의 턱에 목 부분이 눌리면서 결국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의식을 잃었다. 

 

경찰 측이 부랴부랴 중앙대학교 부속 용산병원의 의사를 불러왔는데, 의사의 언론 증언에 의하면 "사건 현장에 물이 흥건했다"고 한다. 

 

당황한 수사관들은 사건 은폐를 위해 대공분실 부근의 용산 중앙대학교병원으로 이송해 응급처치를 시도했지만, 박종철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당시 사망을 최초 확인한 오연상 당시 중앙대학교병원 부속 용산병원 내분비내과 전임강사는가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회고하기를 "당시 우연찮게도 왕진이 가능한 내과의사는 나뿐이었고, 박종철은 우연의 일치로 왕진 요청 전에는 살아 있었을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도착 당시 사실 정황상 불필요한 가혹행위가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태였지만, 일단은 바로 사망선고를 내릴 수는 없었기에 심폐소생술을 약 1시간을 진행했고 그래도 박종철의 상태가 변하지 않자 경찰이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이에 오연상은 '용산병원으로 가면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형사들에게 "미리 준비를 위해 응급실에 전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경황이 없던 수사관 5인방은 그냥 전화를 허락했다. 

 

오연상은 응급실에 전화하여 "이 환자는 병원으로 가면 안 된다, 응급실장이 막아달라"고 전했고, 응급실장 뿐 아니라 당시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장 진료부장 등이 총동원되어 박종철의 시신의 내원을 막아 시신은 국립경찰병원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형사들은 오연상에게 "사망진단서를 써 달라"고 했지만, 오연상이 도착했을 때는 손 써볼 틈도 없이 사망해 있었기에 사망진단서 대신 사체검안서를 써 주었다고 한다. 

 

이때 "환자의 사인을 모르기에 미상으로 썼고 부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했는데 경찰은 그냥 받아들였다.

 

이후 이 사실을 동아일보 기자 윤상삼에게 전달하였고 오연상은 검찰에 조사는 많이 받았으나 이미 신군부와 대공분실의 손을 떠났기에 그들은 오연상에게 손을 댈 수 없었고, 이 틈을 노려 한동안 병원에 휴가를 쓰고 잠적했었다고 한다.

이들은 박종철이 병원에서 숨진 것으로 조작하려 했으나, 중앙일보 서울지검 출입기자 신성호가 소식을 듣고 곧바로 데스크에 보고하여 그날 2단짜리 꼭지에 기사가 들어갔다. 해당 사건을 다루는 영화로는 '1987'과 '변호인' '보통사람' 등이 있다.

 

 

 

 

 

 

 

 

 

매일안전신문 / 이현정 기자 peolesaf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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