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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규 변호사 |
[매일안전신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4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중대한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이 법은 산업현장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만 형사책임이 집중되는 또 다른 불균형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2026년 3월 기준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 판결 101건 가운데 무려 84건이 중소기업에 선고되었다는 사실은 이 질문에 무거운 시사점을 던진다. 전체 판결의 83%가 중소기업에 집중된 현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반면 중견기업을 포함한 대기업 계열사의 판결은 10건에 불과했다. 더욱이 법 시행 직후 대형 붕괴사고로 사회적 관심을 모았던 일부 대기업 계열사 사건조차 중처법 위반 부분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처럼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발생하는 처벌의 양극화는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물론 산업재해의 상당수가 중소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2025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 통계를 보면, 전체 사망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58%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였다. 중소기업은 원청 의존 구조, 낮은 단가 경쟁, 만성적 인력 부족 속에서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할 여력이 매우 부족하다. 안전관리 전담인력을 두기 어렵고, 위험성평가나 안전교육조차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구조 자체가 중소기업 현장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하는 현상 자체를 단순히 불공정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사고 발생 빈도만이 아니다. 사고 이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응 능력의 격차가 처벌 결과를 더욱 극단적으로 갈라놓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법 시행 초기부터 전문 로펌과 안전컨설팅 조직을 통해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구축하였다. 안전보건관리체계 문서화, 위험성평가 기록, 내부 감사 시스템, 외부 자문 네트워크 등을 미리 갖추어 두었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형사 방어 논리를 구성할 수 있다. 경영책임자 특정 여부,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 여부, 사고와 의무위반 사이의 인과관계 등을 치열하게 다투며 장기간 수사와 재판을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무죄 또는 감형을 이끌어내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반면 중소기업은 현실적으로 전문적인 법률 대응이 어렵다. 상당수 사업주는 중대재해처벌법 자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를 맞닥뜨린다. 수사기관의 요구에 따라 미비한 서류나 형식적 절차 누락이 확인되면 사실상 혐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진술하는 경우도 많다. 안전관리체계가 문서로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법 위반이 인정되는 사례도 존재한다. 결국 대기업은 법리를 다투고, 중소기업은 사실상 자백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기소와 유죄 판결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도급 구조에서 나타난다. 일부 사건에서는 원청은 불기소되고 하청업체만 기소되는 사례도 있었다. 실제 작업환경을 지배하고 예산과 공정을 통제하는 주체는 원청인 경우가 많지만, 현장의 직접 고용 관계만을 기준으로 하청업체 책임이 집중되는 것이다. 이는 산업현장의 실질적 권한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이며, 중소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매우 가혹한 현실이다. 위험은 하청이 떠안고 책임도 하청이 부담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산업안전 체계의 근본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처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중대재해 정책은 처벌 강화에 지나치게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처벌만으로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안전은 공포만으로 정착되지 않는다. 특히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처벌 위험을 알면서도 현실적으로 안전투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는 단속과 처벌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예방과 지원 중심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우선 중소기업 맞춤형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지원이 절실하다. 대기업 수준의 인력과 예산을 전제로 한 의무를 영세 사업장에 동일하게 요구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현재의 제도는 마치 초등학생에게 대학 입시 수준의 시험을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법이 요구하는 수준과 현장의 실제 역량 사이의 간극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은 구조적으로 법 위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헌법상 비례성 원칙이나 과잉금지 원칙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소기업에는 ‘위험성평가 중심 안전관리체계’를 실질적으로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대한 문서 작성이 아니라 실제 위험요인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것이다. 정부는 업종별·규모별 특성에 맞는 표준 안전 체크리스트를 개발하여 보급해야 한다. 예컨대 건설업, 제조업, 물류업 등 고위험 업종에 대해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간단하고 실효성 있는 안전 매뉴얼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이 최소한의 비용으로도 핵심 위험요인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올해부터 강화되는 새로운 위험성평가 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과 현장 정착 지원도 중요하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근로자대표 참여 보장, 평가 결과 공유, 필수 절차 누락 시 과태료 부과 등이 시행될 예정인데, 상당수 중소기업은 이러한 변화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현장에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또 다른 형사책임만 양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을 위한 전문 자문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 현재 상당수 영세사업장은 안전 전문가나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통로 자체가 부족하다. 안전기술 전문가와 안전법 전문 변호사가 협업하는 통합 컨설팅 체계가 필요하다. 단순히 사고 이후 대응만이 아니라 평상시 예방체계 구축 단계부터 자문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지방이나 산업단지 내 영세사업장까지 지원이 확대되어야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고 발생 이후의 신속 대응 체계 역시 중요하다. 중대재해 사건은 초동 대응이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현장 보존, 원인 조사, 진술 대응, 책임 범위 정리 등이 초기 단계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중소기업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인다. 따라서 중소기업을 위한 ‘중대재해 대응 전문 변호사 풀’을 구축하여 초기 수사 단계부터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대기업만이 전문 로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데, 이러한 법률서비스 접근성의 격차가 결국 유전무죄·무전유죄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대재해배상책임보험 활성화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는 한 번 발생하면 기업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을 정도의 막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초래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변호사 선임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형사방어비용과 손해배상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현재 일부 보험은 무죄 확정 시에만 변호사 비용을 보상하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활용도가 떨어진다.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일정 범위 내에서 방어비용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산업안전을 단순한 처벌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동책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산업재해는 특정 사업주 개인의 도덕성 부족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과도한 납기 경쟁, 저가 하도급 구조, 인력난, 안전투자 부족 등 우리 산업구조 전반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영세 사업주 개인에게만 집중시키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현장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법이다. 그러나 법의 목적은 처 벌 자체가 아니라 사고 예방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중소기업만 집중적으로 처벌받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법에 대한 현장의 반감과 위축만 커질 수 있다. 안전은 두려움이 아니라 역량과 지원 속에서 정착된다. 이제는 ‘처벌의 강화’만이 아니라 ‘예방의 실질화’로 정책의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
결국 산업안전은 정부 혼자 해결할 수도, 기업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다. 정부는 실질적 지원과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고, 기업은 안전투자를 비용이 아닌 생존전략으로 인식해야 하며, 전문가들은 현장 중심의 실효성 있는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중소기업에 편중된 과도한 처벌의 악순환을 끊고, 모두가 안전한 산업현장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김영규 변호사(법무법인 비앤에이치 중대재해센터장)
◆ 김영규 변호사 프로필
-1966년 1월 26일생-법무법인 B&H 중대재해센터 산업안전전문 변호사
-고려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금융법무과정 수료
-현, 서울교통공사 외부 안전전문가
-현, 한국전력공사 산업안전 전문변호사
-전, 춘천지방검찰청 차장검사·대검찰청 공안3과장
-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형사상고위원회 위원장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중대산업재해 쟁점과 사례-」저자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주요취급업무 : 중대재해(산업재해·시민재해) 컨설팅·형사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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