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 계엄군 투입 사실 재확인... ‘美문서 공개’

사회 / 장우혁 기자 / 2021-07-06 16:38:20
문서내용 中, 전두환 “개인적 정치 야심 없다”
前 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 ‘노먼 소프’가 촬영한 계엄군 모습 (사진, 문체부 제공)
前 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 ‘노먼 소프’가 촬영한 계엄군 모습 (사진, 문체부 제공)

[매일안전신문] 군부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무력진압을 위해 미국에 계엄군 투입 사실을 알린 문서가 공개됐다.


6일 외교부에 따르면 1980년 5월 27일 군부가 광주시민들을 무력 진압하기 전날 계엄군 투입 결정을 미국에 알린 사실이 미 정부 문서 통해 재확인됐다.


이날 외교부가 미 정부로부터 받은 5.18 민주화운동 관련 비밀해제 문서 사본 21건에는 1980년 5월 26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면담한 결과 보고가 포함돼 있다.


면담 내용에서 최 실장은 “계엄사령관처럼 차분하고 책임감 있는 이들을 포함한 다수 군 지휘관들은 (당시 광주)상황이 더 악화하도록 둬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 지휘관인 소 중장(소준열)에게 도시 재진입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했으며 그는 실제 진입 전 서울에 통보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최 실장은 “민간인과 일부 간부들은 당초 충분히 알리고 사전 통보한 이후 낮에 재진입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다른 이들은 이 방식이 저항 강도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군사행동은 사전 발표 없이 이뤄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이 이 같은 계엄군 재진입 결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내용은 1989년 미 국무부가 광주 특위에 보낸 답변서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미 정부의 문서가 완전히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문서에는 12·12사태 직후인 1979년 12월 15일 글라이스틴 대사의 전두환 보안 사령관 면담과 1980년 5월 23일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 면담 결과 등도 포함됐다.


전두환은 면담 자리에서 12·12사태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수사에 필요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체포에 저항해 벌어진 일이라며 “개인적 정치 야심은 없으며 최규하 대통령의 자유화 정책을 지지한다.”라고 주장했다.


주한 미대사관이 1980년 5월 22일 국무부에 보낸 상황 보고에는 광주에서 계엄군과 지역 시민 위원회 간 협상이 진행 중이며 위원회에는 김대중과 가까운 인사들도 포함됐다는 내용이 수록됐다.


이 협상에 대해 계엄사령관은 김대중 석방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980년 1월 17일 작성된 문서에는 당시 한국을 찾은 리처드 홀부르크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가 최규하 대통령과 김영삼 총재, 김종필 총재 등을 면담한 내용이 있다.


북한이 신현확 국무총리와 김영삼 총재, 김종필 총재 등 남한 인사 12명에게 남북 대화를 요청하며 보낸 서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이다.


최 대통령은 서한에 남한 총리의 공식 직함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남한의 존재를 더는 부인할 수 없음을 인정한 징후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김영삼 총재는 “북한과 대화는 필요하지만, 서한에 대한 답변은 조심스럽고 시중하게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종필 총재는 자신과 신현확 총리, 정일권 전 총리 이외에 서한을 받은 사람들이 북한과 대화에 참여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해당 문서는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지난 5월 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외신기자 前 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 ‘노먼 소프’가 촬영한 사진을 ‘5·18민주화운동 특별전’통해 공개한 바 있다.


해당 행사는 이달 31일까지 진행하며 옛 전남도청 내외부 모습과 목포역 광장 시위 모습, 광주 농성동 죽음의 행진과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 후 시가행진 등을 사진으로 접해볼 수 있다. /장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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