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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
[매일안전신문=이현정 기자] 제주 4.3 사건이 눈길을 끈다.
6일 밤 10시 30분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4.3의 희생자였던 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4.3사건을 다루기 위해 1991년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둔 제주도 다랑쉬 오름 인근의 이야기로 거슬러 간다. 당시 캠코더를 든 탐사단원들은 억새밭을 헤치며 무언가 찾고 있었는데 이들이 찾고 있는 건 바로 잃어버린 마을이다. 한참을 헤매다 지칠 대로 지친 탐사단원들 사이로 동만이 발견한 것은 작은 구멍이었다.
구멍을 막고 있는 돌을 슬쩍 치웠더니 동굴이 나타나는데 다른 이가 손전등을 켜 동굴 안을 비추는 순간 무언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반짝이는 하얀 공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해골이었다. 그런데 둘러보니 해골이 하나가 아니었다. 동굴 안에서 백골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동굴 안 백골 시신의 정체를 알기 위해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때는 1948년 제주도에서는 "속솜허라이"라는 말이 멤돌았다.
20살 오빠를 사다리 밑에서 받치고 있던 어머니와 피투성이로 돌아온 아버지, 그리고 어느 날 숨진 채 발견된 어머니, 하나둘 사라지는 동네 사람들까지 이런 상황에서도 제주도 사람들은 '속솜'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제주 4.3사건. 공식 피해자만 15,000명, 무려 7년간이나 이어진 기나긴 피의 학살의 사건이다. 이는 3.1절 경찰의 말에 아이가 치여 항의하러 모인 일반 시민에게 발포한 사건을 발단으로 서북청년회등의 극우단체의 과잉진압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희생당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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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
일제의 패망 이후 미군정의 편의로 인해 대부분 대한민국의 국군·경찰 된 정부 인력과 해당 도민에 남로당이 일부 있다는 이유로 좌파, 즉 '빨갱이'로 몰린 도민과 충돌하였고 그 이후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극우 무장 단체의 테러를 북한의 남침 위협을 이유로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이 적극 개입 및 지시하였다. 학살 기간 1948년 4월 3일 무장 봉기를 하였고 그후 낮에는 국군과 경찰이 마을을 장악하고 밤에는 봉기 세력들이 점령하기를 반복했다.
제주도는 이미 일제에게 가혹한 수탈을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결7호 작전이 시행되어 섬 전체가 폭격으로 초토화될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었다. 1945년 이후부터 7.27 정전협정 이전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주도는 사상 최악의 지속적인 기근에 시달렸다. 4·3이라는 명칭은 1948년 4월 3일에 발생했던 대규모 소요사태에서 유래하였다.
남로당계 공산주의자들과 반란 진압을 명목 삼아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한 서북청년단 등 극우 폭력단체가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이라 볼 수 있으며 정작 해당 남로당은 초반에 제주도를 떠나거나 제압되었다. 정치극단주의에 휩싸여 공권력의 대민 범죄를 방조, 묵인, 조장한 이승만 정부의 책임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미군정 역시 해방정국의 혼란상이 있었다지만 제주도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영 논리에 근거한 편파적인 판단을 내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매일안전신문 / 이현정 기자 peoplesaf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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