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칼럼] 보이지 않는 산재의 후폭풍 – 산재로 남지 못한 사고들과 숫자의 함정

칼럼 / 정유진 노무사 / 2026-08-13 10:34:52

 

[매일안전신문] 부위가 여러 번 다쳐 약해진 끝에, 직력이 길지 않아도 업무상 질병이 발병하는 사례가 분명히 늘고 있습니다. 안전보건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큰 사고 앞에는 수많은 작은 사고와 잠재적 위험이 숨어 있다”는 법칙이 이야기되어 왔는데, 지금 우리의 산재 현실은 이 법칙이 노동자의 몸속에서 그대로 구현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전의 산업재해는 대형 추락·협착·사망사고처럼 단번에 눈에 띄는 사건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허리·무릎·손목처럼 특정 부위가 수년간 반복해서 조금씩 다치고, 결국 그 부위가 약해진 상태에서 비교적 짧은 직력에도 불구하고 질병으로 폭발하는 패턴이 뚜렷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누적된 손상의 상당 부분이 공식적인 산재로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는 공상으로 처리하자”, “산재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사회적 압박과 정서 속에서 경미한 사고들은 제도 밖에 머무르고, 노동자의 몸 안에서만 조용히 기록됩니다.

그 사이 결정기관은 업무상 질병을 판단할 때 여전히 직력(경력년수)이라는 숫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직력을 몇 년으로 적을 것인지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고들을 마치 “없었던 일”로 취급한다는 점입니다. 요양급여 내역과 진료기록에는 같은 관절·같은 부위에 대한 염좌·타박·통증 치료가 여러 번 찍혀 있음에도, 이를 업무상 손상의 연속으로 읽어내지 않고 “직력 3년이면 짧지 않나”라는 말 한 줄로 인과관계를 잘라버리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렇게 되면 업무상 질병은 “보이지 않는 산재의 후폭풍”이 됩니다. 초기에 충분한 인정과 보호가 이루어졌다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특정 부위가 약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미한 사고 단계에서 제도와 사회가 외면하고, 질병 단계에서는 “직력이 짧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책임을 부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산재보험이 가장 필요로 했던 예방과 보호의 기능이 정작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작동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요양급여 내역을 단순한 치료 영수증이 아니라 하나의 ‘의학적 이력서’로 읽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동일 부위 반복 진료, 증상의 재발 시점, 작업환경 변화와 치료 시기의 겹침, 공상 처리 압박이 있었던 시점 등을 입체적으로 보면, 겉으로 보기엔 직력이 짧아도 실질적으로는 오랜 기간 손상과 노출이 축적되어 온 사례들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숫자 중심 심사에서 패턴 중심 심사로의 전환입니다. 노동자의 몸은 “몇 년 일했는가”보다 “어떻게,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다쳐 왔는가”로 기록됩니다. 현업에서 뛰는 노무사의 역할은 바로 이 지점을 설계하고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직력이라는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작은 사고들과 반복된 치료 기록, 공상으로 덮인 이력들을 한 줄 한 줄 끌어올려, 업무상 질병으로 가는 길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복원하는 것. “직력이 짧다”는 말로 인과관계를 단절하는 관행을 깨고, 작은 사고들이 모여 질병을 만든다는 당연한 사실을 제도와 실무에 반영하도록 압박하는 것. 그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는 사람이 바로 현장의 기록을 가장 가까이에서 읽는 노무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법인 더보상 정유진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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