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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리딘의 질소 위치 재배치를 통한 위치 이성질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
[매일안전신문=이상훈 기자]
의약품에 널리 사용되는 피리딘의 기존 골격을 유지하면서 질소 원자의 위치를 바꿔 새로운 위치 이성질체를 만드는 합성 기술이 개발됐다. 기존처럼 이성질체마다 별도의 출발 물질과 합성 경로를 설계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복잡한 분자를 직접 변환하는 방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홍승우 단장직무대행 연구팀이 피리딘 고리에 있는 질소의 위치를 바꾸는 ‘질소 원자 전위’ 합성법을 개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IBS 기초과학연구단 지원 사업으로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Nature에 게재됐다. Nature에도 최원준·주혜원·박지용·홍승우 연구진의 ‘Positional isomerisation of pyridine via nitrogen transposition’ 논문이 게재된 것으로 확인된다.
피리딘은 탄소 원자 5개와 질소 원자 1개가 육각형 고리를 구성하는 화합물로 의약품을 비롯한 다양한 화학물질의 기본 골격으로 활용된다. 같은 종류의 치환기가 결합돼 있더라도 질소와 치환기가 놓인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용해·흡수·투과·결합 등의 물리화학적 성질과 생물학적 활성이 달라질 수 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원자와 치환기의 구성은 같으면서 위치만 다른 ‘위치 이성질체’를 만들어 특성을 비교하는 이유다.
기존 합성법에서는 원하는 위치 이성질체를 확보하려면 구조별로 서로 다른 출발 물질을 준비하고 각각의 합성 경로를 설계해야 했다. 완성된 분자의 치환기를 직접 이동시키는 방식도 연구됐지만 치환기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반응 조건이 달라 여러 치환기가 결합된 복잡한 구조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치환기를 옮기는 대신 위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질소 원자의 자리를 변경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 치환기와 분자 골격은 유지하면서 고리 내부의 질소 위치를 재배열해 치환기와 질소 사이의 상대적인 배치를 바꾸는 방식이다. Nature 논문에서도 이 방법은 미리 설치된 치환기의 종류를 바꾸지 않은 채 피리딘의 위치 이성질체를 직접 얻는 전략으로 제시됐다.
반응 과정에서는 외부에서 새로운 질소를 피리딘 고리에 넣은 뒤 원래 존재하던 질소를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6개의 원자로 구성된 고리가 일시적으로 7원자 구조로 확장됐다가 다시 배열되면서 질소의 위치가 달라진 피리딘이 만들어진다. 연구팀은 동위원소 추적 실험을 통해 외부에서 공급한 새로운 질소가 고리에 남고 기존 질소는 질소 기체 형태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새 합성법은 치환기가 하나인 피리딘뿐 아니라 두 개 이상의 치환기가 결합된 구조와 서로 다른 화학적 성질을 가진 치환기가 함께 있는 복잡한 분자에서도 적용됐다. Nature 논문 역시 단일·이중·다중 치환 피리딘과 구조적으로 복잡한 분자 환경까지 적용 범위를 확인했다고 제시했다.
연구팀이 반응 조건을 조정한 결과 위치 이성질체 합성 수율은 최대 88%를 기록했다. 반응물 규모를 10밀리몰까지 늘린 실험에서도 74%의 수율이 유지됐다.
실제 의약품을 이용한 실험도 진행했다. 연구팀은 항암제인 비스모데깁과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 소염진통제 에토리콕시브에 질소 원자 전위 방식을 적용했다. 기존 약물이 가진 복잡한 골격을 유지하면서 피리딘의 질소 위치가 달라진 새로운 분자를 합성했다.
합성되는 위치 이성질체의 비율을 조절할 수 있는 조건도 확인했다. 동일한 출발 물질을 사용하더라도 용매에 따라 만들어지는 위치 이성질체의 비율이 달라졌으며, 계산화학 분석에서는 용매에 따라 반응에 필요한 에너지 장벽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용매 조건을 달리해 특정 위치 이성질체의 생성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확보한 고리 편집 방법을 피리딘에 한정하지 않고 다른 질소 함유 헤테로방향족 고리로 확대하는 후속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위치 이성질체를 각각 처음부터 합성하지 않고 기존 분자를 기반으로 관련 분자군을 구축해 구조와 활성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홍승우 단장직무대행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핵심 골격 안의 원자 위치 자체를 바꿔보자는 발상의 전환에서 출발한 연구”라며 “완성된 분자의 핵심 골격을 원자 수준에서 직접 편집해 물성과 약효 변화를 다각도로 탐색하고, 신약 후보 물질의 발굴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이번 연구는 창의성이 새로운 연구 혁신의 길을 열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성과”라며 “연구자들이 기존의 틀을 넘어 새로운 개념 창출과 미지의 영역 개척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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