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안전신문] 최근 20여년간 물류창고에서 우레탄 작업을 하다가 화재참사로 이어지는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4차례나 일어났다. 사망자만 113명에 이른다. 사건사고가 나면 원인을 분석해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6일 소방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4월29일 사망자 38명이 발생한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처럼 2008년에도 2차례 물류창고에서 우레탄 작업을 하던 중 화재가 48명의 귀한 목숨을 앗아갔다. 1998년에도 물류창고에 우레탄 작업 도중 중 불이 나 27명이 숨졌다.
일반적으로 대형사고가 한번 나면 학습효과로 인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독 물류창고 우레탄 작업중 화재사고만은 학습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레탄 작업 중 화재는 유증기가 퍼져 있다가 불씨가 붙어 나는 후진국형 화재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는 상황에서도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19‘98년 1만달러, 2008년 2만달러, 2020년 3만달러 시대로 먹고 살만해졌는데도 안전보다 비용절감이나 공기단축을 중시하는 후진국형 사고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불감증 보다 안전지식 부족이 문제
안전불감증도 원인으로 꼽히지만 안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우레탄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유증기가 발생한다는 건 안전을 조금만 아는 관리자일지라도 다 아는 상식이다. 우레탄 작업장 주변에 어떤 화인도 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화재참사가 난 물류창고 작업자들은 우레탄 작업으로 유증기가 발생하고 여기에 불꽃이 붙으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과정에서 유증지가 발생한다는 건 이미 상식처럼 운전자들이 아는 사항이다. 어느 누구도 주유소에서 담뱃불을 붙이지 않는다. 정전기로 인해서도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조차 잘 알고 있다.
우레탄 작업을 하면서 유증기가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작업중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근무했을 가능성은 적다. 유증기 작업과 용접기 사용이 불가피한 엘리베이터 설치작업을 함께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레탄 작업중 발생하는 유증기의 위험성을 모른채 작업자들이 근무했더라면 병사가 전쟁터에 나가 날아오는 총알을 의식하지 않고 전진하는 격이다.
안전관리자는 이런 위험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임만큼 안전관리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인간은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다. 이런 과실이나 안전불감증을 보완하기 위해서 안전제도를 두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안전제도는 어리석음 상태에서 위험이 빚어질 것까지 고려해 세운 것이어야 한다. 바로 ’어리석음 방지 장치(Foolproof System)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안전제도는 형식적인 눈가림 안전정책에 머물고 있다.
◆ 유해·위험방지계획서 규정 15번 바꾼다고 될까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위험한 요소 작업에 대해서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작성하도록 제도화됐다. 명칭만 놓고보더라도 유해요인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계획으로, 훌륭한 제도다. 유해하고 위험한 곳에 대해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만 형식적으로 법에 붙였을 뿐 실질적으로 위험을 방지할 규정으로서는 미비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는 1998년 부산 냉동 물류창고에서 화재로 27명이 사망하자 부랴부랴 산업안전보건법을 재개정해 ‘유해·위험방지계획서’ 규정을 구체적으로 개선했다.
개정 후 2008년에 2차례 대형화재로 48명이 사망하자 다시 정부는 더욱 구체적인 내용으로 손질해 연면적 5000㎡ 이상의 냉동·냉장 창고시설에 대한 안전규제를 강화했다.
이렇게 제도가 강화됐으나 12년이 지나 다시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된 이후 지금까지 개정만 43차례나 이뤄졌지만 후진국형 안전사고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이천 물류창고 사업주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제출한 결과 ‘조건부 적정’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현행 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공단에 제출해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를 받는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규정에 따라 ‘적정’, ‘조건부 적정’, ‘부적정’으로 판정 결과가 나온다.
공단은 ‘부적정 판정’이 나면 지자체장과 담당 지방고용노동청장에게 통보한다. 통보를 받은 지방고용노동청장은 ‘공사착공 중지 명령’이나 ‘계획변경 명령’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사업주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지방고용노동청에 변경하여 공단에 다시 제출하게 되어 있다.
결국 ‘부적정 판정’을 받더라도 변경신청을 하면 다시 공사를 할 수 있다. 현 제도상으로 시정 효과가 미미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천 물류센터 화재에 대해서 “과거에 일어났던 유사한 사고가 대형 참사의 형태로 되풀이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사고”라고 안타까워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2008년 냉동창고 화재사고 이후 유사한 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였고 우리 정부에서도 화재 안전 대책을 강화해 왔는데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이유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산업안전 보건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 43차례 개정됐고 14차례 걸쳐 ‘유해·위험방지계획서’ 규정이 변경됐다.
이번에도 정부는 규정 개정에 나섰다. 노동부(장관 이재갑)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지난 1일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확인제도를 전면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개편하면 유해·위험방지계획서 관련 규정만 15번째 바뀐다.
14차례 바꿔 사고를 막지 못했는데 1차례 더 바꾼다고 안전사고가 예방이 될지 의구심이 든다.
◆ 제도 변경 앞서 스스로 위험성 알도록 해야
제도도 문제지만 제도를 활용하는 사람이나 제도가 적용되는 사람이 따를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제도를 어기면 강한 제재를 가하는 정책도 가능하지만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도가 부실하더라도 작업자가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업자들이 안전에 대한 지식을 지니도록 안전교육부터 새로 체계를 세워 강화해야 한다. 모르면 겁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우레탄 작업이 무섭다는 걸 알면 굳이 제도로 강요하지 않더라도 각자 안전에 각별히 주의할 수밖에 없다. 주유할 때 담뱃불을 붙이지 않는 것처럼.
코로나19가 무섭다는 걸 국민들이 스스로 알기에 각자가 마스크를 사려고 몇시간 동안 줄을 섰던 것이다. 코로나19의 위험 대비책 중에서 마스크 착용이 가장 기본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기에 마스크 품귀난이 일도록 전국민이 움직인 것이다.
결국 안전의식과 안전제도가 중요하지만 안전지식을 갖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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