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석 청년정책] 고창의 미래는 농산물 브랜드화다

칼럼 / 강이석 원장 / 2025-11-26 16:43:18
▲ 강이석 원장

 

일본 농촌의 농산물 브랜드화는 지방 소멸 위기를 넘어설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차원을 넘어, 지역에 청년을 붙잡아 두는 ‘생존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석탄산업 붕괴로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은 홋카이도 유바리는 ‘유바리 멜론’을 일본 농림수산성 지리적표시(GI)까지 획득한 명품으로 키우며 지역의 기반을 다시 세웠다. 이 과정에서 지역 고교생이 기획·마케팅을 배우는 ‘Hokkaido CLASS 프로젝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청년을 소비자가 아닌 ‘지역 산업 설계자’로 참여시킨 것이다. 기후현 시라카와촌 역시 세계유산 마을의 문화자산을 바탕으로 ‘白川郷 코시히카리’ 브랜드를 개발하고, ‘생산–가공–관광’을 잇는 6차 산업화로 청년 귀향 정책을 강화했다. 두 사례가 전하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브랜드화란 농업의 범위를 넘어 지역의 미래를 다시 짓는 일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청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을 가장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곳으로 전북 고창군이 꼽힌다.

전북 고창군은 2024년 행정안전부의 지방소멸위기지수에서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지정된 대표적인 농촌 지역이다. 특히 지난 3년간 줄어든 인구 중 67%가 18~45세 청년층이라는 통계는, 고창의 인구 구조가 얼마나 급하게 기울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고창은 단순히 위기 지역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드물게 농업·축산·수산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복합 생태지역’이라는 강점을 품고 있다.

고창은 연간 3만 톤의 고구마 생산량을 기록하는 전북 최대 고구마 산지다. 특히 베니하루카 품종은 당도와 저장성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복분자는 고창을 대표하는 품목이지만, 생과 판매 53%, 가공 수매 16.4%로 가공·유통의 부가가치화가 부족한 구조적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여기에 수박 같은 프리미엄 여름 작물과 풍천장어·바지락·천일염 등 해양 자원까지 더해져, 농축수산 포트폴리오는 어느 농촌보다 남다르다.

이 강점을 ‘미래 산업’으로 바꾸는 핵심 전략이 바로 브랜드화다. 2021년, 고창군은 농특산물 공동브랜드 ‘높을高고창’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브랜드 전략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통합 마크가 아니라, ‘고창’이라는 지명 자체를 품질의 기준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이후 실제로 브랜드 제품이 대형 유통망에 진입하면서 고창의 시장 접근성은 크게 향상됐다.

2025년에는 더 큰 변화가 나타났다. 고창군은 롯데웰푸드·행정안전부와 협약을 체결해 고창산 베니하루카 고구마로 제과류 13종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일본 유바리가 ‘유바리 멜론’을 명품 브랜드로 키워 지역을 재생시킨 것처럼, 고창은 ‘고창 고구마’를 고부가가치 콘텐츠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실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통 구조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역형 온라인 플랫폼 ‘고창마켓’은 2024년 매출 20억 원 돌파, 입점 업체 150개, 등록 상품 700종을 기록하며 지역 농산물의 판로 혁신을 이끌고 있다. 과거 복분자가 생과 중심 구조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이제는 고창의 작물들이 온라인·가공·브랜딩을 결합한 실질적 ‘상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변화가 있다. 바로 청년농업인 증가다. 전북일보 보도에 따르면 2024년 고창의 만 45세 미만 청년농업인은 약 460명이다. 특히 2025년 청년창업농 선정자 중 35%가 관외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다. 즉, 고창이 외부 청년에게 “머물 수 있는 지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고창군의 전략적 정책 지원이다. 중요한 것은 고창이 청년을 단순히 “농사짓는 인력”이 아니라, 지역 산업의 기획자·브랜드 창작자·가공 혁신 주체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고창군의 변화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방향성은 분명히 긍정적이다. 일본 유바리와 시라카와가 청년을 ‘지역 설계자’로 참여시키며 재건에 성공했듯, 고창도 농산물 브랜드화를 기반으로 가공·유통 혁신과 청년 참여 확대가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복분자의 낮은 가공 비중, 고구마·수박 산업의 유통망 의존, 청년 정착의 불안정성 등 과제는 남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고창은 지역 농산물이 산업으로 재편되고, 청년이 다시 유입되며, 지역 스스로 재생의 가능성을 회복하는 희망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안정적으로 지속된다면 고창군은 ‘소멸 위험 지역’을 넘어, 한국 농촌 재생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선도 지역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농촌의 내일은 보조금의 숫자가 아니라 정책의 방향성으로 증명된다. 땅이 살아나면 사람이 돌아오고, 사람이 돌아오면 지역은 다시 태어난다. 한국의 농촌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 한국문학예술원 강이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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