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수 한류이야기] 할리우드가 한국 예능에 앉은 날, 한류가 바뀌었다

칼럼 / 하지수 대표 / 2026-05-06 14:21:08

[매일안전신문] 지난 4월 15일, 그날은 유난히 손에 쥔 리모컨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문득 멈춘 화면 속에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소파 위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 그것도 전 세계 최초 한국 개봉을 앞두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들고 약 20년 만에 다시 같은 작품으로 한국 예능에 나와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 정말 이런 시대가 되었구나!”

우리는 오랫동안 그들을 스크린 너머에서만 만났습니다.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는 여전히 단단했고, 앤 해서웨이의 밝고 세련된 에너지도 그대로였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같은 작품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웠지만, 더 낯설고 따뜻했던 것은 그들이 한국의 안방 예능에서 유재석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살다 살다 메릴 스트립이 한국 예능에 나오다니, 이쯤 되면 진짜 문화강국이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장면은 ‘영화 홍보’라기보다 우리가 지나온 한류의 시간을 비추는 작은 거울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아시아 일정은 대개 일본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우리는 일본 현지에서 촬영된 짧은 인터뷰를 뒤늦게 접하곤 했습니다. 한국은 그들의 여정에서 스쳐가는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이번 내한에서도 일본 행사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기자간담회와 레드카펫, 예능 출연까지 이어지는 보다 촘촘한 일정이 펼쳐졌습니다. 두 배우는 정해진 홍보 문구를 반복하기보다 한국이라는 공간과 관객을 충분히 경험하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차이가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흐름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티모시 샬라메와 젠데이아는 영화 <듄: 파트2> 홍보를 위해 같은 프로그램에 앉았고, 빌리 아일리시는 앨범을 들고 한국 예능을 찾았습니다. 스칼렛 요한슨 역시 한국 시청자들과 직접 만났습니다. 한때는 우리가 찾아가던 자리였는데,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변화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의 한국 호감도는 82.3%에 이르렀고, 그 이유의 중심에는 문화콘텐츠가 있었습니다. 무려 45.2%입니다. 이제 한국은 경제나 기술보다 드라마와 음악, 영화와 예능으로 먼저 떠올려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처럼 소비되고 있는 셈입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더 흥미로운 장면이 보입니다. 사람들의 64%가 틱톡 같은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되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실제로 그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콘텐츠는 더 이상 ‘보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발걸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한류도 그 흐름 위에서 우리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동시에 그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습니다.

그날 방송에서 두 배우는 한국 전통 꽃신을 모티브로 한 붉은 하이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한국식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단순한 정해진 홍보 문구를 말하고 떠나는 일정이라기보다, 한국이라는 공간 자체를 즐기고 이해하려는 태도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낯선 문화를 대하는 방식에서 그들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메릴 스트립이 손주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를 꺼내는 대목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콘텐츠가 일상적인 대화가 되었다는 그 말은 한 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깊이 스며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앤 해서웨이가 박찬욱과 봉준호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세계적 배우가 실제로 관심을 갖고, 대화하고 싶어 하는 동시대 창작자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콘텐츠의 바깥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HYBE는 해외에서 현지 인재로 그룹을 만들고, 한국식 제작 시스템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약 12만 명이 지원했다는 사실은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더 이상 콘텐츠만을 내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만드는 방식까지 공유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바라보는 쪽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세계의 스타들이 한국을 찾아와 앉고, 우리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며, 우리의 반응을 기다립니다. 한국은 이제 가장 먼저 작품을 선보이고, 직접 이야기하며,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 문화적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요란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장면은 반가운 해프닝을 넘어섭니다. 할리우드가 한국 예능에 앉은 날, 한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간 뒤, 이제는 세계를 다시 한국으로 이끄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 위드온 글로벌 브릿지 하지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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