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미담] 수녀님과 빵

칼럼 / 김용복 원장 / 2024-10-24 13:17:36
▲ 광진구 세종한의원 김용복 원장
30여년 운영하고 있는 한의원 인근 복지관에서 오랜 기간 의료봉사를 했다. 수녀님이 복지관 관장으로 있는데 점심시간을 이용해 독거노인과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치료해 왔다. 그 인연으로 엠마누엘라 수녀님을 십여 년 전 처음 만났다. 중년인 수녀님은 허리와 어깨 등 여러 관절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고 지역 주민들께 열심히 봉사하는 매우 신실하고 싹싹하며 예의가 남달랐다.

수녀님들 복장은 단아하지만 건강상 단점이 있다. 무더운 여름철 통풍이 잘 되지 않는다. 햇볕을 맘껏 쬘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요즘 중요성이 강조되는 비타민 D가 부족하고 뼈 건강이 약하다. 피부도 외부 온도변화에 취약하다.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잘 먹는다고 하더라도 영양상태가 충분치 않을까 염려된다. 수녀님의 근력을 테스트해 보니 근육량이 부족해 탄성이 약했다. 뼈도 촉진해 보면 가늘고 약골이다.

허리 치료를 두 달쯤 받으면서 점심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다. 장기간 치료를 하려면 음식으로 기력 보강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영양보충이 필요하다고 넌지시 말해도 한사코 “괜찮다”고 매번 거절했다. 한 번은 간곡한 설득 끝에 동행하신 수녀님과 더불어 갈비탕을 사 드렸다. 혹여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결제는 나중에 했다. 수녀님은 침 값도 받지 않는데 너무나 폐를 끼친다는 말만 거듭했다.

어느 날 한의원으로 빵이 배달됐다. 수녀님들이 드시는 빵은 큰 빨래 방망이처럼 뭉툭하게 생겼다. 통밀로 구운 식사대용이다. 시중 제과점에 진열된 단 맛 나는 빵과는 전혀 다른 담백한 맛이 난다. 간호사들 몫까지 넉넉히 챙겨서 보내줬으나 간호사들은 저마다 “괜찮다”고 사양했다. 가끔 아침 대용으로 먹어보니 씹을수록 감칠맛 나는 건강 빵이었다.

그 후로도 엠마누엘라 수녀님은 계속 치료받으러 오셨고 병세도 호전됐다. 수녀님이 다른 수녀님들을 소개해 주셔 한의원은 수녀님들의 편안한 쉼터 같은 치료시설이 됐다. 수녀님들은 복장이 번거로워 치료받을 때 낯을 가린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오지 않기에 간호사들에게 더 편안하게 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몇 년이 지나 초여름, 수녀님이 뜻밖의 얘기를 한다. 흉추에 척추결핵암이 발견되어 곧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됐다고.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위로의 말씀을 해 드렸더니 의외로 담담하게 얘기한다. 하느님께 의탁한 상태라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지방으로 가셨어도 항암치료 차 서울에 오면 항상 한의원에 들려 안부도 전하고 물리치료와 침 치료를 받았다. 갈수록 점차 안색이 핼쑥해지고 근육도 말라갔다.

2년 후 즈음, 암세포가 여러 군데 전이됐다고 한다. 3주에 1번씩 항암주사를 맞는데 몹시 힘든 모양이다. 또 6개월 후쯤, 오랜 만에 한의원에 오셨다. 건강이 더 안 좋아 보였다. 경남 마산에 내려가 수녀님 일곱 분과 함께 유기농으로 자급자족하며 생활하는데 그곳에서 당분간 항암을 하신단다. 얼굴이 처연하며 이별을 고하는 것 같았다. 차비를 하시라고 금일봉을 드렸다. 이건 아니라고 거듭거듭 사양했지만 내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내려가신 지 얼마 후 뜻밖에 수녀님께 전화가 왔다.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거의 꺼져 가고 있었다. “느낌상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갔다”며 그간 감사한 분들께 전화를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나한테는 차비를 받은 게 영 맘에 걸린다며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고 절절하게 작별인사를 고한다. 아, 이런 전화를 받는다는 건 고통이다. 나 또한 수녀님이 오시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며 회복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기를 당부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후 한의원에 택배가 도착했다. 수녀님이 그 아픈 병세에도 빵이 가득 담긴 선물을 보내셨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타정신을 발휘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악인은 죽기 직전에야 본인 삶이 잘못됐다고 후회한다는데, 고결한 수녀님의 삶은 모든 걸 다 주고 떠나는 테레사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

얼마 후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머금은 사진과 함께 선종하셨다는 문자였다.

아직 수녀님이 보내준 빵이 냉동실에 보관돼 있다. 조금씩 빵을 먹으며 수녀님이 평소 지역주민들께 베푸셨던 숭고한 희생, 봉사정신과 한편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한다. 수녀님이 천국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라라 본다.


광진구 세종한의원 김용복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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