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수의 한류이야기] BTS를 따라 걷는 여행, 서울이 한류의 지도가 된다

칼럼 / 하지수 대표 / 2026-04-15 14:00:00

 

[매일안전신문] 요즘 서울을 걷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장면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도시 곳곳이 하나의 거대한 ‘한류 지도’처럼 읽힌다는 점입니다. 공연장과 방송국, 기획사 사옥에 머물던 동선은 이제 다방과 식당, 공원과 박물관, 산길과 강변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류는 더 이상 특정 공간에서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따라 이동하며 체험하는 이야기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단연 BTS가 있습니다. 최근 해외 언론은 팬들이 서울을 ‘순례(pilgrimage)’하듯 이동하며 아티스트의 흔적을 따라 걷는 현상을 주목했습니다. 논현동의 식당, 을지로의 오래된 다방, 한강공원과 산책로까지 이어지는 이 동선은 단순한 관광 코스를 넘어 ‘서사를 따라 걷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팬들은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의 공기를 느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장소를 찾고, 그 과정에서 한류가 하나의 무대를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를 더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논현동의 유정식당 역시 비슷합니다. 이곳은 이제 단순한 식당을 넘어, 팬들에게는 BTS의 시간과 감정을 상상하게 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벽과 천장에 남겨진 팬들의 흔적, 멤버들과 관련된 사진과 메시지들, 그리고 “BTS가 즐겨 먹던 메뉴를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식사를 주문하는 외국인 팬들의 모습은 꽤 인상적입니다. 어떤 팬에게는 한 끼 식사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연습생 시절을 견디던 청춘의 시간을 함께 상상해보는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음식이 곧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 흐름은 제도권 관광에서도 확인됩니다. 서울관광재단은 BTS와 연결된 장소들을 하나의 관광 코스로 묶어 소개하고 있으며, 서울시는 광화문 공연 당시 교통 통제와 안전 대책을 포함한 도시 운영 시스템을 가동했습니다. 한류 이벤트가 공연을 넘어 도시의 동선과 구조까지 바꾸는 공공 이벤트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생활 공간을 넘어 자연스럽게 문화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립중앙박물관입니다. 영국 미술 전문지 The Art Newspaper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연간 약 650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하며 세계 3위 수준의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외국인 방문객도 23만 명을 넘어서며 꾸준히 늘고 있고, 전체 관람객 역시 전년보다 크게 증가해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점차 하나의 변화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수치는 한류의 또 다른 방향을 보여줍니다.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전통문화 공간으로 관람객을 이끄는 흐름입니다. 실제로 BTS 멤버 RM의 방문 이후 ‘사유의 방’은 팬들에게 중요한 방문 코스가 되었고, 관련 문화상품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상품 매출 역시 2024년 약 212억 원, 2025년 상반기에만 115억 원을 기록하며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스타를 따라 시작된 발걸음이지만, 결국 관람객들은 한국의 역사와 예술, 철학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무료 관람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큽니다. 상설전시와 일부 특별전은 무료로 운영되고, 외국인을 위한 다국어 해설 서비스도 제공됩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 구조 덕분에 박물관은 한류를 통해 유입된 방문객들이 전통문화를 만나는 ‘열린 입구’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유료화 논쟁도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부 안팎에서는 국립문화시설의 이용료 현실화 필요성이 언급되며 국립중앙박물관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다만 현재까지는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 유지되고 있지만, 실제 도입 여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설령 논의가 이어지더라도, 시행 시점은 2027년 이후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유료화를 둘러싼 시각은 엇갈립니다. 한쪽에서는 수익자 부담 원칙과 재정 효율성을 강조하며, 입장료 수입을 통해 전시의 질과 보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국립박물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공공재이며, 유료화가 문화 접근성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특히 한류를 계기로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이나 청소년에게는 중요한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 논쟁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은 관광, 교육, 문화 체험이 결합된 복합 공간이며, 동시에 한류의 확장 통로이기도 합니다.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팬들이 박물관에서 한국의 시간을 만나는 구조가 이미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팬들이 서울을 소비하는 방식이 훨씬 섬세해졌습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입국했지만, 결국 서울이라는 도시의 결을 몸으로 익히고 있는 셈입니다. 팬들은 공연장을 넘어 다방에 앉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산과 강변을 걷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류는 비로소 ‘경험’이 됩니다.

어쩌면 한류의 다음 단계는 더 큰 확장이 아니라 더 깊은 연결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시작된 이 도시의 이야기를 어떻게 더 풍성하게 이어갈 것인지, 그 질문이 지금 서울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처럼 느껴집니다.

/ 위드온 글로벌 브릿지 하지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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