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매일안전신문=김순점 국민안전기자]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부역혐의로 인해 가족까지 희생당한 73년 전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의 현장을 공개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는 지난 28일 충남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에서 73년 전 당시 집단학살 정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온전한 형태의 유해와 유품이 다수 발굴됐다고 29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7일부터 20여 일간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에서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을 진행해왔다.
이번 유해발굴지는 1950년 10월 4일 온양경찰서 업무가 정상화되면서 좌익 부역혐의 관련자와 그 가족들을 매일 밤 1~2회에 걸쳐 40~50명씩 트럭에 실어 성재산 일대와 온양 천변에서 학살한 다음, 그 시신을 유기한 곳이다.
또한 1951년 1·4후퇴 시기인 1월 초에는 도민증을 발급해 준다며 배방면 사무소 옆 곡물창고 2개와 모산 역 부속창고에 좌익 부역혐의 관련자와 그 가족들을 구금한 후, 한 집에 남자아이 1명만 제외하고 수일간 수백 명을 집단학살하고 유기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 유해발굴에선, 최소 40구 유해로 이들은 대부분 건장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인 남성일 것으로 추정됐다.
유해는 폭 3미터, 길이 14미터의 방공호에서 집단학살 당한 것으로 보이며, 유해 대부분 L자 형태로 학살당한 후 방공호에 바로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 위에는 파랗게 녹슨 탄피가 얹혀 있었고 손목에는 군용 전화선인 삐삐선이 감긴 채 발견됐다.
| ▲ 사진 :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A1 소총 탄피 57개와 소총 탄두 3개, 카빈 탄피 15개,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사용한 소총인 99식 소총 탄피 등이 다량 발굴됐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5월,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을 1950년 9월에서 11월 사이 온양 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와 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이 지역주민들을 인민군 점령 당시 부역혐의로 몰아 성재산 방공호와 수철리 금광 굴, 염치리, 대동리 일대에서 집단학살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조사 결과, 희생자 77명의 신원이 확인됐고 참고인 진술에 따라 희생자를 800여 명으로 추정했다.
배방면 지역은 9.28수복 시기 최소 200여 명, 1.4후퇴 시기 30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희생자들은 가족 단위로 살해돼 유족이 없는 경우가 많아 유해 수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실효성 있는 유해발굴과 위원회 종료 이후, 유해발굴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유해 매장 추정지 실태조사 및 유해발굴 중장기 로드맵 수립 최종 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근거로 전국 6개 지역 7개소를 선정해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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