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전세사기와 단순 채무불이행의 경계...'기망의 고의' 입증과 형사 고소의 실무

칼럼 / 주혜진 변호사 / 2026-10-21 08:00:29

 

[매일안전신문] "집값이 떨어져서 보증금을 못 돌려준다"는 집주인의 말 한마디에 세입자들은 순식간에 수억 원의 전세금을 날릴 위기에 처한다.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가 고소장을 제출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이 "단순히 돈을 못 주는 민사 문제일 수 있으니 수사가 어렵다"는 식이라면 피해자의 아득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수사 현장에서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주는 '결과'가 아니라, 계약 체결 당시에 세입자를 작정하고 속인 '기망의 고의'가 있었는지만을 명백한 처벌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이 사기죄를 인정하는 대표적인 전세사기 유형은 이른바 ‘동시 진행(신축 빌라 무갭투자)’ 방식이다. 건축주나 분양대행업자가 매매가와 전세가를 동일하게 설정한 뒤,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매매대금을 충당함과 동시에 자력 없는 바지임대인에게 명의를 넘기는 구조다.

이러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집값이 떨어져 보증금을 못 준다"는 임대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임대차 계약 체결 당시 신축 빌라의 리베이트(분양 수수료)가 유통되었는지, 바지임대인의 명의 변경이 세입자 몰래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임대인이 다수의 주택을 소유하면서 별도의 자금 조달 능력 없이 보증금 돌려막기 구조를 형성했는지 등을 종합하여 '기망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판례를 축적하고 있다.

또한 임대인이 계약 당시 "선순위 근저당권이나 먼저 들어온 임차인들의 보증금 규모"를 거짓으로 알렸거나, 세금 체납 사실을 숨긴 경우 역시 명백한 기망 행위에 해당하여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문제는 피해를 입은 임차인이 단순히 "임대인이 돈을 안 준다"는 취지로 고소장을 제출할 경우, 수사기관에서 이를 단순 민사 분쟁으로 판단해 '혐의없음(불송치)' 처분을 내릴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형사 고소를 통해 수사를 본격화하려면 계약 체결 시점의 시세 조작 정황, 임대인·중개업자·분양대행사 간의 공모 관계, 자금 흐름 등의 객관적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사기죄의 구성요건을 명확히 특정하여 고소장을 작성해야 한다.

형사 고소는 단순히 상대방을 처벌하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전세사기 가해자들은 민사 소송이나 경매 절차 진행 중에는 자금이 없다고 회피하다가도, 형사 처벌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 비로소 숨겨둔 자금을 끌어 모아 합의를 시도하거나 보증금 일부를 우선 변제하곤 한다. 따라서 치밀하게 준비된 형사 고소는 임대인에게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여 보증금을 돌려주게 만드는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전세사기 사건에서 법원이 가장 비중 있게 보는 대목은 '계약 당시 피고인이 보증금을 정상 반환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지했는가'에 대한 객관적 정황 증거다. 수사기관이나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알아봐 주지 않으므로, 임차인 측에서 계약 체결 경위, 명의 변경 과정, 리베이트 수수 여부 등 기망의 고의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해 활용해야 한다.

/로엘 법무법인 주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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