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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송규 (사)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기술사.공학박사 |
네팔을 덮친 대홍수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일반적인 홍수와는 성격이 다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빙하와 기반암이 대규모로 붕괴하고, 엄청난 양의 물과 암석·토사가 좁은 협곡을 따라 순식간에 쏟아져 내려왔다. 그 속도와 파괴력을 생각하면 이른바 ‘산악 쓰나미’라고 부를 만한 재난이다.
이번 재난을 보면 먼저 빙하호와 언색호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빙하호는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물이 빙하 주변의 움푹한 지형 등에 고여 형성된 호수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 새로운 빙하호가 만들어지거나 기존 빙하호가 커질 수 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둑이 붕괴해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면 빙하호 붕괴홍수(GLOF, Glacial Lake Outburst Flood)가 발생할 수 있다. 히말라야에서는 기온 상승과 함께 빙하호가 확대되면서 이러한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 언색호(堰塞湖)는 산사태나 암석·토석 붕괴물이 계곡이나 하천을 가로막으면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자연댐 호수다. 물이 계속 차오르다가 토석으로 만들어진 자연댐이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면 막대한 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진다.
따라서 빙하호와 언색호는 형성과정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고산지대에 막대한 양의 물을 저장했다가 갑작스럽게 방출하면서 이번과 같이 하류에 치명적인 재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네팔 대홍수에서도 빙하와 기반암 붕괴가 중요한 출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거대한 질량이 높은 산에서 무너지면 위치에너지가 엄청난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물과 암석, 토사가 결합해 좁은 V자형 계곡을 질주하면서 하류의 도로와 교량, 발전소, 마을을 덮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재난이 왜 발생했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지구온난화다.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메탄, 질소산화물 등은 산업활동과 교통, 농축산 활동 등 인간의 생활과 경제활동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배출된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고산지역의 빙하와 영구동토에도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빙하는 단순한 얼음덩어리가 아니다. 고산 암반의 균열에 존재하는 얼음과 영구동토는 산악지형의 안정성과도 관계가 있다. 기온 상승으로 얼음이 녹고 동결된 지반이 약화되면 암석의 균열과 사면 불안정성이 커진다.
여기에서 현재 재난관리의 중요한 한계가 드러난다.
우리는 앞으로 빙하가 얼마나 녹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연구와 예측을 해오고 있지만, 빙하가 녹고 산악지형이 불안정해졌을 때 어디에서 붕괴가 발생하고, 그 결과 어느 지역에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기술과 시스템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이제 빙하의 감소량을 관측하고 예측하는 단계에서 그로 인한 피해를 예측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AI와 위성영상, 레이더, 드론, 라이다(LiDAR), 지표변위 센서, 기상·수문 관측망을 결합하면 빙하 이동, 암반 균열, 사면 변위, 강우량과 하천 수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붕괴 가능지역뿐 아니라 붕괴했을 때 물과 토석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고, 몇 분 뒤 어느 마을·도로·발전소에 도달하며, 예상 침수 높이와 피해범위가 어느 정도인지까지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AI 시대의 재난예측은 ‘발생 가능성 예측’에서 ‘피해 규모와 범위 예측’으로 발전해야 한다.
네팔은 이러한 시스템이 특히 필요한 나라다.
히말라야는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는 지구의 판의 경계지역이다. 지각운동이 활발해 지진과 산사태 위험이 큰 지역이다. 2015년에는규모 7.8의 네팔 대지진에서 약 9천 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여기에 기후변화에 따른 빙하 감소와 영구동토 약화, 집중호우 등이 겹치면서 재난 위험은 더욱 복합적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것은 히말라야 고산지역의 급속한 개발이다.
세계 최고 높이의 고도까지 도로와 철도 등 교통망이 확대되고 터널, 교량, 댐, 수력발전소 등이 건설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개발을 이번 대홍수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질과 지형이 극도로 불안정한 고산지역의 대규모 개발이 재난 위험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진·빙하·급경사·산사태 위험이 중첩된 지역에서 대규모 절토와 터널 굴착, 발파와 같은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일반지역보다 훨씬 엄격한 안전성 평가가 필요하다. 이제 개발사업의 안전성 평가에도 기후변화에 따른 미래의 빙하와 지반 변화까지 세부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네팔의 재난은 네팔 국민만의 문제도 아니다.
네팔은 매년 100만 명 안팎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국가다. 한국인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관광객과 기업 근로자들이 히말라야의 도로와 교량, 숙박시설과 각종 기반시설을 이용한다.
따라서 히말라야와 같은 고위험지역의 안전을 특정 국가만의 책임으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 세계인이 함께 이용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자연과 기반시설을 세계공공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을 지키는 안전시스템 역시 글로벌 차원의 안전대책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유엔 산하 관련 기구가 당사국과 즉시 협력해 국제적인 긴급대응체계를 가동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는 각국이 위성·빙하·지질·기상·수문 정보를 공유하고 위험지역을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구조·의료·통신·항공·위성·드론·DNA 분석 등 필요한 전문인력과 장비를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도록 사전에 국가간 협약과 절차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
세계 각국의 구조대와 첨단장비가 준비돼 있는데도 국가 간 행정절차와 승인 문제로 현장 투입이 늦어진다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다.
재난에는 국경이 있어도 골든타임에는 국경이 없어야 한다.
오늘 히말라야를 걷는 사람은 다른 나라 국민일 수 있지만 내일은 우리 가족일 수 있다. 우리 자녀가 여행할 수도 있고 우리 기업의 직원이 근무할 수도 있다.
기후변화는 국경을 넘는다. 빙하에서 시작된 물과 토석도 국경을 넘는다. 이제 안전 역시 국경을 넘어야 한다.
빙하가 얼마나 녹는지를 예측하는 시대에서 녹은 빙하와 변화한 산악환경이 어떤 재난을 일으키고 어디까지 피해를 가져올 것인지를 예측하는 시대로 가야 한다.
그리고 세계 어느 곳을 방문하더라도 우리 가족 누구나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안전은 한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이 아니다. 인류가 함께 투자하고 함께 누려야 할 가장 중요한 글로벌 공공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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