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석 청년정책] 고흥스테이, 닫힌 농촌의 문을 다시 연다
강이석 원장
peopelsafe@peoplesafe.kr | 2025-12-03 16:50:20
이탈리아의 두 작은 마을은 ‘소멸 농촌’을 ‘재생 농촌’으로 바꾼 전 세계적 대표 사례다. 아브루초 산악지대의 산토 스테파노 디 세사니오는 2000년대 초반 상주 인구가 100명 이하로 줄어 사실상 유령 마을이 되었던 곳이다. 수백 년 된 석조 건물은 무너져 내리고, 마을은 더 이상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은 폐허를 정리하는 대신, 오히려 외부인을 초대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알베르고 디푸소(분산형 호텔)’라는 재생 모델을 도입해 비어 있던 돌집을 객실, 공방, 공용식당으로 되살렸고, 그 결과 관광객은 10배 증가, 숙박률은 80%까지 뛰어올랐다.
바실리카타 지역의 그로톨레는 더욱 극적이다. 인구가 3,000명에서 300명 이하로 줄고 빈집 600채가 방치된 곳이었지만, 에어비앤비와 지역단체가 함께 추진한 ‘원더 그로톨레’ 프로젝트는 단 3개월 체류자를 공모하는 데 28만 명의 지원자를 끌어냈다. 이후 관광객 수는 120% 증가했고 일부 청년은 마을로 이주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두 마을은 공통적으로 ‘빈집·고령화·인구감소’라는 위기를, 외부 청년과 장기 체류자를 끌어들이는 기회로 전환했다. 이들은 농촌이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올 때 비로소 되살아나는 공간임을 증명했다.
이탈리아의 기적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농촌, 그중에서도 전남 고흥군이 처한 현실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고흥은 지난 20년 동안 인구가 2만5천 명 이상 감소했고, 출생아 수는 481명에서 163명으로 급감했다. 고령인구 비율은 43%, 20~39세 여성은 5%에 불과하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이미 경고선을 넘어섰고,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지방소멸 고위험지역’의 대표 사례로 꼽혀 왔다.
농촌의 인구 기반이 허물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에서 고흥의 위기는 분명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흥은 동시에 사람이 몰려오는 농촌이기도 하다. 2024년 관광객이 566만 명, 전년 대비 11% 증가했고, 쑥섬 방문객은 95%, 팔영산과 휴양림의 방문객은 각각 45%, 43% 증가했다. 나로우주센터라는 특별한 관광 인프라와 KTX 연계 관광까지 더해지며 고흥은 ‘떠나는 사람들은 많지만, 찾는 사람들은 더 많은’ 특이한 구조를 가진 지역이 되었다. 이 비대칭 구조는 오히려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정주 인구는 줄어도, 생활·관광 인구는 늘어난다는 점은 이탈리아식 ‘체류형 농촌 재생’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흥은 그로톨레와 매우 흡사한 실험을 이미 시작했다. 영남면 사도마을의 ‘고흥바람채’는 방치된 빈집을 리모델링해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위한 숙소로 만든 사례다. 군이 예산을 지원하고, 대학생 봉사단이 직접 손을 보탰으며, 지역 주민들이 생활지식을 나누며 이 공간을 함께 완성했다. 단순히 집만 고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의 문을 연 시도였다.
또 다른 상징적 프로젝트는 전남도가 추진한 ‘만원 세컨하우스’다. 이 사업의 1호가 고흥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가 크다. 빈집을 정비하고 리모델링 비용을 지자체가 부담한 뒤, 도시민에게 월 1만 원으로 최대 7년까지 살 수 있도록 제공하는 정책은 외부 청년·신중년에게 농촌을 ‘잠시 머무는 곳’에서 ‘살아볼 수 있는 곳’으로 바꿔주는 든든한 초대장이다.
여기에 고흥군은 체류형 인구 유입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고흥스테이’는 1인 귀농 준비자와 은퇴자가 최대 2년까지 머물 수 있는 공공임대 농촌살이 주택이다. 특히 지방소멸대응기금 31억 원으로 조성된 2호는 주택 11채와 공동 교육공간까지 갖춘 복합형 모델로, 단순한 임대주택이 아니라 ‘살면서 배우고, 배우며 관계를 만드는’ 농촌 체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귀농귀촌지원센터가 운영하는 1~6개월 살아보기 프로그램, 외국인·청년·귀농인을 아우르는 통합교육 플랫폼까지 더하면 고흥은 이미 “살아보기, 체류, 정착”의 사다리를 세 단계로 갖춘 지역이다.
결국 고흥은 이탈리아 두 마을의 성공 조건으로 극심한 인구감소, 빈집의 대량 존재, 자연·관광 자원의 풍부함, 외부인의 관심 확대 등을 모두 갖춘 지역이다.
이탈리아의 산토 스테파노와 그로톨레가 거대한 변화의 출발을 “단 5명의 외부 청년”으로 시작했듯, 한국의 농촌도 관계를 회복하는 작은 실험에서 미래가 열린다.
고흥은 이미 그 문을 살짝 열기 시작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문을 통해 마을로 들어올 새로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남길 작은 발자국이, 이러한 변화가 한국 농촌의 미래를 다시 열어줄지도 모른다.
/ 한국문학예술원 강이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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