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600년을 거슬러 뿌리를 찾아…태조·태종·근녕군 첫 참배기

매일안전신문

peopelsafe@peoplesafe.kr | 2026-09-28 10:29:16

9월 25일 추석 차례를 지내고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선조 참배 일정을 세웠다. 전주이씨 근녕군파 20세손으로 살아오면서 언젠가는 근녕군의 선친인 조선 제3대 임금 태종 이방원, 그리고 그 선친이자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로 이어지는 선조들의 묘소를 직접 찾아뵙고 싶었다. 
나에게 근녕군 이농(李禯)은 19대조이며, 그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20대조, 태종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는 21대조가 된다. 족보를 펼치면 이름과 계보로 이어져 있는 분들이지만, 그분들이 실제로 잠들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 참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초 추석 차례를 지낸 뒤 바로 참배에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비가 내려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선조들을 처음 찾아뵙는 길인 만큼 서두르기보다는 날씨가 좋은 날 차분한 마음으로 제대로 참배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를 미뤄 9월 26일, 마침내 첫 선조 참배길에 올랐다.
 

■ 오전 10시, 6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출발하다
오전 10시 집을 나선 이날의 여정은 이동 동선을 고려해 먼저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릉에 있는 태종 헌릉을 찾아 참배하고, 이어 경기도 구리 동구릉의 태조 건원릉을 거쳐 마지막으로 경기도 고양에 있는 근녕군 묘소를 찾아가는 순서로 정했다.
태종에서 태조로, 그리고 다시 근녕군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오전 10시에 출발해 오후 5시경 귀가하기까지 약 7시간. 거리만 놓고 보면 수도권 세 곳을 승용차로 돌아오는 하루 일정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날의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600여 년 전 조선 초기로 들어가는 역사기행이자 나의 뿌리를 직접 찾아가는 특별한 여정이었다.


■ 첫 번째 참배지, 20대조 태종 이방원의 헌릉
집을 출발한 지 약 20분 만에 첫 번째 목적지인 헌인릉에 도착했다.
헌인릉에는 조선 제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의 헌릉, 그리고 옆에는 조선 제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이 자리하고 있다.
이날 내가 찾아뵐 선조는 나의 20대조 태종(이방원)이었다.

▲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릉
주차장에서 내려 능역으로 들어섰다.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능역 안은 울창한 숲과 고요함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능을 향해 걸어가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600여 년.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삶으로 헤아리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의 간격이 내가 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조금씩 좁혀지는 듯했다.
태종 이방원은 우리 역사에서 매우 익숙한 인물이다. 조선 건국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8년간 왕위에 오른 뒤에는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통치체제를 정비했다. 1418년에는 아들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그가 바로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이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부터 ‘태종 이방원’이라는 이름을 수없이 들었다. 역사책과 사극, 각종 기록을 통해서도 익숙하게 접해온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헌릉 앞에 직접 서니 ‘조선 제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앞서 ‘나의 20대조’라는 사실이 먼저 가슴에 와닿았다.
역사책 속의 인물이 어느 순간 나의 가계와 연결된 선조로 다가온 것이다. 처음으로 선조의 능을 직접 찾아 정중하게 참배를 올렸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수백 년이라는 시간도 결국 사람과 사람, 부모와 자식, 그리고 그 후손들의 삶이 이어져왔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두 번째 참배지, 21대조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헌릉에서 첫 참배를 마친 뒤 다시 승용차에 올랐다. 두 번째 목적지는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동쪽에 9개의 릉)이었다. 서울에서 구리로 이동하는 동안 생각은 자연스럽게 한 세대를 더 거슬러 올라갔다. 조금 전 찾아뵌 태종 이방원의 아버지이자 나에게는 21대조가 되는 태조 이성계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약 1시간을 달려 동구릉에 도착했다.

▲태조 이성계 왕릉(릉 위에는 고향 함흠의 억세가 심어져있다)


동구릉에는 조선왕조의 여러 왕과 왕비가 잠든  대표적인 왕릉군이다. 왕과 왕비의 능이 숲과 어우러져 있는 이곳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한 축소판과도 같다.
그러나 이날 나의 목적지는 조선왕조 최초의 왕이자 나의 21대조의 왕릉인 건원릉이었다.
동구릉 입구에서 숲길을 따라 건원릉으로 향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이 길의 끝에는 조선왕조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인물이 잠들어 있었다. 태조 이성계.


고려 말 장수였던 이성계는 위화도회군 이후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고 1392년 조선을 건국해 초대 6년간 국왕이 되었다. 그리고 1408년 세상을 떠나 이곳 건원릉에 잠들었다.
건원릉에 도착해 바라본 봉분은 다른 조선왕릉과 조금 달랐다.
일반적인 왕릉의 봉분에는 잔디가 입혀져 있지만 건원릉 봉분에는 억새가 자라고 있다. 태조의 생전에 고향인 함흥을 그리워했기 때문에 유언에 따라 고향의 억새를 가져다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봉분을 지켜온 억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건원릉 앞에서 두 번째 참배를 올렸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역사에서는 한 왕조를 세운 건국 군주이지만 이날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나의 21대조라는 사실이었다.
태조에서 태종으로, 태종에서 근녕군으로 이어지는 혈맥을 생각하니 역사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1392년 조선을 세운 선조와 600여 년 뒤를 살아가는 후손이 같은 공간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다. 태조가 살았던 세상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사회다.
그러나 세대가 이어지고 또 이어져 오늘의 후손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건원릉에서 참배를 마치고 돌아서면서 ‘역사는 결국 사람의 삶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 마지막 참배지, 19대조 근녕군 이농과 부인 하양 허씨
동구릉을 나와 이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는 족보상 나의 1대조인 태종의 9째 아들인 근녕군 묘소로 향했다. 

태조와 태종의 능을 참배한 뒤 근녕군 묘소로 향하는 길은 앞선 두 곳을 찾아갈 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태조와 태종이 조선왕조 전체의 역사와 연결돼 있다면 근녕군은 나의 가계가 직접 이어지는 전주이씨 근녕군파의 파시조이기 때문이다.


근녕군의 휘는 이농(李禯)이며 태종(이방원)의 9째 아들이다.
1411년에 태어나 1461년에 세상을 떠난 근녕군은 태종 이방원의 아들로, 전주이씨 근녕군파의 파시조다. 근녕군파 20세손인 나에게 근녕군은 19대조가 된다.
묘역에 도착해 보니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근녕군 묘는 근녕군 이농과 부인 하양 허씨가 한 봉분에 함께 모셔진 합봉묘였다.

▲ 근녕군과 부인 하양허시 합봉(대종의 9째 아들)


왕릉에서 보았던 웅장한 능역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부부가 한 봉분에 함께 잠들어 50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묘소 앞에 선 후손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근녕군뿐 아니라 부인 하양 허씨 역시 오늘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가계의 한 축이다.
따라서 이날의 마지막 참배는 근녕군 한 분만을 찾아뵙는 것이 아니라 한 봉분에 함께 잠들어 있는 근녕군과 부인 하양 허씨 두 분께 올리는 참배였다.
앞서 찾아본 헌릉과 건원릉이 왕릉 특유의 장엄함과 국가적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면 이곳에서는 보다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전주이씨 근녕군파’라고 말할 때 그 근원이 되는 선조가 바로 이곳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묘소 앞에 서자 이날 찾아온 세 곳이 하나의 계보로 이어졌다.
21대조 태조 이성계.
20대조 태종 이방원.
19대조 근녕군 이농과 부인 하양 허씨.
태조에서 태종으로, 태종에서 근녕군으로 이어진 계보는 이후 수많은 세대를 거쳐 오늘의 후손에게까지 이어졌다.
족보에서는 몇 줄의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는 계보다. 그러나 이날 직접 세 곳을 찾아가 보니 그 몇 줄의 이름 뒤에는 600년이 넘는 시간과 수많은 사람의 삶이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한 봉분에 함께 모셔진 근녕군과 부인 하양 허씨의 묘 앞에 서니 후손이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그 세대가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오늘의 내가 존재한 것 아닌가. 근녕군파 20세손인 후손이 5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처음으로 파시조 부부가 함께 잠든 묘소 앞에 섰다.
정중하게 참배를 올렸다. 이날 세 차례의 참배 가운데 마지막 참배였다.
헌릉에서 태종을 만났을 때의 감정, 건원릉에서 태조를 바라보았을 때의 감회와는 또 달랐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평소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사람에게 뿌리란 단순히 족보상의 계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조들의 삶이 이어지고, 그 후손들이 또 자신들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의 가계와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 긴 흐름 속에 오늘의 나 역시 서 있는 것이다.

■ 오늘 하루 7시간, 역사로는 600년의 여정

근녕군과 부인 하양 허씨가 함께 잠든 묘소에서 마지막 참배를 마친 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오후 5시경 집에 도착했다. 오전 10시에 출발했으니 약 7시간에 걸친 첫 선조 참배 역사기행이었다. 시간만 보면 하루에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일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내가 오간 길을 역사적 시간으로 바꾸어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헌릉에서 태종을 만나고, 동구릉 건원릉에서 다시 한 세대를 거슬러 태조를 찾아뵈었다. 그리고 고양으로 이동해 태종의 아들이자 나의 직계 선조인 근녕군과 부인 하양 허씨가 함께 잠든 합봉묘 앞에 섰다. 승용차의 계기판에는 몇 시간의 이동으로 기록되었지만 마음속에서는 600년이 넘는 시간을 오간 셈이다.
돌아보면 이번 여정은 단순한 성묘가 아니었다.
조선왕조의 역사와 나의 가족사가 만나는 현장을 직접 찾아간 역사기행이었다.
역사는 책 속의 연도와 사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1392년 조선 건국, 태종의 즉위와 왕권 강화, 세종에게로 이어진 왕위 계승 같은 사건들은 역사책에서 접하면 하나의 연도와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 그 앞에 서는 순간 역사의 의미는 달라진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역사 속 인물이 자신의 선조라면 느낌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은 우리 역사 속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번 참배를 통해 그 이름 앞에 ‘21대조’와 ‘20대조’라는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그리고 근녕군 이농은 전주이씨 근녕군파라는 나의 뿌리가 시작되는 19대조 선조로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 곁에는 부인 하양 허씨가 한 봉분에 함께 잠들어 있었다.

■ 선조를 찾아 떠난 길에서 오늘의 나를 돌아보다

추석 차례를 지낸 후 시작된 하나가 9월 26일 첫 참배로 이어졌다.
비 때문에 하루 미뤄진 일정이었지만 오히려 차분한 마음으로 선조들을 찾아뵐 수 있었다.
19대조 근녕군 이농과 부인 하양 허씨.
20대조 태종 이방원.
21대조 태조 이성계.
이름만 놓고 보면 족보와 역사책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태종이 잠든 헌릉의 고요한 숲길을 걸었고, 태조가 잠든 건원릉의 억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녕군과 부인 하양 허씨가 한 봉분에 함께 잠든 묘소 앞에 직접 섰다.
그 순간 족보 속의 이름과 역사책 속의 인물은 더 이상 먼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600년이라는 시간은 매우 길다.


한 사람의 일생으로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세월이다. 하지만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그 다음 세대가 다시 후손을 남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600년의 시간은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그 연결선 위에 나 역시 서 있다.
이번 참배를 통해 새삼 느낀 것은 뿌리를 안다는 것이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조가 누구였는지를 아는 것은 결국 오늘의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동시에 지금을 살아가는 나는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선조를 찾아 떠난 길이었지만 그 끝에서 돌아보게 된 것은 결국 오늘의 나였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5시에 끝난 여정. 약 7시간의 길이었다.


그러나 역사로는 600년을 거슬러 올라간 길이었다. 21대조 태조 이성계에서 20대조 태종 이방원으로, 다시 19대조 근녕군 이농과 부인 하양 허씨로 이어지는 선조들의 흔적을 직접 찾아간 첫 참배였다.
600년을 거슬러 선조를 찾아간 하루. 역사를 만나는 길이었고,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다시 확인한 것은 수많은 세대를 거쳐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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