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첫 양형기준안…기본 1년6월~4년·최대 징역 15년
유죄 49건 중 42건 집행유예…국회입법조사처도 합리적 양형기준 필요성 제기
이상훈 기자
newssanjae12@naver.com | 2026-09-23 18:00:43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중대산업재해 사건에 적용할 별도의 양형기준안이 마련됐다. 근로자가 사망한 중대산업재해치사의 기본 권고형은 징역 1년6개월에서 4년으로 정해졌으며,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이 중하거나 가중 사유가 중첩될 경우 최대 징역 15년까지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법률이 정한 법정형을 바꾼 것이 아니라 실제 재판에서 형량을 정할 구체적인 기준을 새로 만든 것이 핵심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21일 제148차 전체회의에서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중대재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심의했다. 양형위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에 대해 별도의 형량 범위와 양형인자, 집행유예 기준을 마련한 것은 법 시행 이후 처음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시행 당시부터 사망사고에 대해 징역형의 하한을 두는 등 처벌 수위를 높게 설정했다. 현행법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중대한 부상·직업성 질병이 발생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형 확정 후 5년 이내 재범하면 형을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법률이 어디까지 처벌할 수 있는가를 정했을 뿐,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자체에 적용할 세부적인 양형구간은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중대산업재해치사의 1년 이상의 징역은 최저형만 규정한 형태다. 형법 제42조에 따르면 일반적인 유기징역은 1개월 이상 30년 이하이고 형을 가중할 경우에는 50년까지 가능하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 제1항만 놓고 보면 징역형의 법정 범위가 매우 넓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구체적인 선고형 수준을 판단하기 어렵다. 안전관리체계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는지, 사고 이전에 위험성이 반복적으로 보고됐는지, 같은 사고가 되풀이됐는지, 피해자가 몇 명인지 등 사건마다 책임 정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별도의 중대재해범죄 양형기준이 없었던 만큼 법정형만으로는 통상적인 사건과 책임이 특히 무거운 사건을 어느 형량 구간에 배치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웠다. 양형위도 피해 규모와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정도, 사고 경위 등에 따라 사건의 죄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번 기준 설정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또 ‘징역 1년 이상’이라는 하한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실형을 선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62조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등을 선고하면서 정상에 참작할 사유가 있는 경우 형의 집행을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유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징역형의 최저선이 1년으로 정해져 있더라도 실제 선고형이 3년 이하라면 다른 요건을 충족할 경우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이번 양형기준안은 중대재해범죄의 집행유예 판단 기준도 함께 마련했다. 특히 사고 이후 단순히 위반사항을 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고 원인을 조사해 유해·위험요인을 제거·대체·통제하고, 같은 원인의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개선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실효적인 조치’를 이행한 경우를 집행유예 판단의 주요 긍정사유로 반영하도록 했다. 단순한 재발방지 약속이나 규정·매뉴얼을 수정한 것만으로는 이에 해당하지 않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 판결에서도 이런 특징이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5년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을 분석한 결과 유죄판결 49건 가운데 42건이 집행유예였으며 집행유예율은 85.7%로 집계됐다. 징역형이 선고된 47건의 형량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으로 평균 약 1년1개월이었다. 입법조사처는 법정형과 실제 선고형 사이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합리적인 양형기준 마련을 개선과제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이 때문에 ‘1년 이상’이라는 법정형 자체보다는, 그 넓은 범위 안에서 어떤 사건에 어느 정도의 형량을 적용할 것인지 정하는 세부 기준의 부재가 실무상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양형위원회는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를 양형기준 설정 대상에 추가하면서 국민적 관심과 범죄의 중요성, 실무상 필요성, 범죄 발생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후 5월 중대산업재해치상과 중대산업재해치사를 별도 유형으로 설정하고 이번 회의에서 구체적인 권고형 범위와 양형인자를 마련했다.
새 기준안은 중대산업재해치사 사건을 감경·기본·가중 세 영역으로 나눈다. 감경 사유가 있는 경우 징역 10개월~2년, 별도의 가중·감경 사유가 없는 기본영역은 징역 1년6개월~4년, 가중영역은 징역 3~10년을 권고한다. 기본영역의 하한부터 법정형 하한인 1년보다 6개월 높게 설정한 것이다. 양형위가 파악한 기존 중대산업재해치사 평균 형량 약 1년2개월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특별가중인자가 2개 이상 존재하거나 특별가중인자가 특별감경인자보다 2개 이상 많으면 가중영역 상한을 1.5배로 높이는 특별조정이 가능하다. 가중영역의 상한이 징역 10년이기 때문에 이 경우 권고형은 최대 징역 15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중대산업재해 범죄로 형이 확정된 뒤 5년 이내 다시 중대산업재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권고 형량범위의 상한과 하한을 1.5배 가중하도록 했다.
다만 ‘최대 징역 15년’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새로운 법정 최고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의 법정형은 개정되지 않았으며, 15년은 이번 양형기준안에서 가중 사유가 중첩되는 사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정한 권고형 상한이다. 법정형과 양형기준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형량을 높일 수 있는 사정도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사고 원인이 된 위험요인에 대해 종사자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개선 필요성을 보고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보고를 묵살한 경우, 관계기관으로부터 반복적인 시정명령이나 권고를 받고도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형식적인 조치에 그친 경우 등이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정도가 중한 경우’에 포함된다. 미숙련 근로자가 위험한 작업에 접근할 수 있는 상태로 방치한 경우 등도 가중 판단에 반영된다.
반대로 사고 이후 단순히 위반사항만 고치는 수준을 넘어 사고 원인을 제거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개선하는 등 실효적인 재발방지 조치를 이행한 경우에는 감경요소로 고려한다. 피해자 측의 처벌불원이나 실질적인 피해 회복도 특별감경인자로 설정됐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이 ‘위반 사항을 시정한 경우’를 감경요소로 뒀던 것과 비교하면 중대재해범죄에서는 재발방지 조치의 실효성까지 살펴보도록 한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주요 처벌 근거로 적용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167조 제1항은 안전·보건조치 의무 등을 위반해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여기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책임을 별도로 두고 사망사고에 징역 1년이라는 하한을 설정했다.
양형기준에서도 차이가 확인된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에 대한 양형기준은 감경 6개월~1년6개월, 기본 1년~2년6개월, 가중 2~5년이다. 새로 마련된 중대산업재해치사 기준안은 감경 10개월~2년, 기본 1년6개월~4년, 가중 3~10년으로 각각 높게 설정됐다. 다만 두 범죄는 적용되는 법률과 구성요건이 서로 다른 만큼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처벌이 이번 기준으로 대체됐다고 볼 수는 없다.
중대산업재해치상에도 별도의 권고형이 마련됐다. 감경영역은 징역 6개월~1년6개월, 기본영역은 1년~2년6개월, 가중영역은 2~5년이다. 양형위는 중대산업재해치상 판결 사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법정형과 기존 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 등을 함께 참고해 범위를 설정했다.
이번 기준안이 확정되면 법원은 중대재해 사건의 형량을 정할 때 단순히 사망 또는 부상이라는 결과뿐 아니라 사고 이전에 위험요인을 알고도 방치했는지, 반복적인 사고나 행정기관의 지적이 있었는지,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의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사고 이후 실질적인 재발방지 조치를 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구분해 판단하게 된다.
양형위원회가 마련한 이번 기준은 아직 최종안이 아니다. 공청회와 관계기관 의견조회 등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며, 확정된 기준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법정형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이 개별 사건의 형량을 정할 때 적용하는 권고기준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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